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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생제르맹을 점령한 `오 비외 캉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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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파리의 생제르맹 거리를 걷다 보면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웃도어 및 스포츠 매장인 ‘오 비외 캉푀르(Au Vieux Campeur)’의 간판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오 비외 캉푀르는 생제르맹 거리의 중심부에서 불과 5분 남짓한 거리에 무려 20개가 넘는 매장을 두고 있다. 프랑스의 캠핑 파이오니어 오 비외 캉푀르는 어떻게 생제르맹을 점령했을까.


    프랑스의 캠핑 문화는 1903년 7월 신문 르오토(L’Auto)에 소개된 기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기사는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먼 길을 떠나 텐트를 치고 지내는 ‘야영’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데 영국 사람들은 마치 로빈 후드와 같은 동화 속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라며 다소 냉소적인 느낌으로 캠핑을 다뤘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에서도 캠핑을 교육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캠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캠핑을 통한 교육 활동을 장려하는 단체인 ‘프랑스 캠핑 클럽(CCF)’이 설립됐고 보이스카우트와 연계해 프랑스 내에서 자연 친화적인 활동의 하나로 캠핑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프랑스에는 캠핑 장비를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업체와 유통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본 프랑스 보이스카우트의 리더 로저 드 로르테는 직접 캠핑 장비를 판매하는 상점을 열기로 결심했다. 
    1941년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카우트 활동과 하이킹을 주제로 한 상점을 오픈했다. 아내 솔랑주의 도움을 받아 가장 기본적인 캠핑 장비인 텐트와 보이스카우트용 스카프를 직접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장은 오픈하자마자 텐트와 스카프를 구입하기 위해 몰려든 프랑스 캠핑 클럽 회원들과 보이스카우트들로 연일 성황을 이루며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이후 매장 밖으로 긴 줄이 이어지고 재고를 둘 공간이 부족해지자 로르테는 매장을 생제르맹 거리 48번지로 이전했다.



    생제르맹에 세운 캠핑 마을의 비밀

    오 비외 캉푀르를 처음 오픈했을 때 로르테는 ‘캠핑, 스카우트, 알파인, 겨울 스포츠용품 판매’라는 광고를 내걸었다. 이후 캠핑과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고객이 늘며 자연스럽게 직원 수도 늘어났다. 직원이 증가하자 로르테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유급 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그는 직원들이 휴가 기간에 텐트를 가지고 직접 캠핑을 즐기도록 장려했다.
    그렇게 하자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다. 직접 캠핑을 해본 직원들이 고객에게 보다 구체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서비스와 조언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차별화된 접객 스타일 덕분에 멀리 떨어진 지역의 고객들도 생제르맹의 매장을 찾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신의 지역에도 매장을 열어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이 빈발하자 로르테는 리옹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 분점을 오픈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재고 관리와 비용 증가의 문제로 인해 결국 분점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실패를 교훈 삼아 로르테는 생제르맹 주변에 오 비외 캉푀르 매장을 독립된 점포 형태로 집중 확장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 이유는 한 점포가 붐비면 다른 점포로 가면 되고 재고가 없으면 바로 몇 발자국 떨어진 옆 점포에 가서 구매하면 되기 때문에 관리가 수월하고 고객의 편의성도 증대될 것으로 본 것이다. 그 결과 1971년 이후 생제르맹 주변에는 20개 이상의 오 비외 캉푀르 매장이 들어섰고 이는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듯한 풍경을 연출했다.
    로르테의 손자인 에이메릭은 훗날 인터뷰에서 다른 기업들처럼 하나의 쇼핑몰을 만들어 여러 스포츠 종목을 입점시키는 방법도 가능했을 텐데 왜 굳이 20개의 점포를 각각 두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모든 매장을 한 공간에 모아두는 것이 우리 브랜드만을 위해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생제르맹 지구의 다른 가게들, 예를 들어 책방이나 카페와 함께 번성하는 데 주목한다면 여러 개의 점포를 분산해 운영하는 것이 지역 상권 활성화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한 고객 관계 전략

    이처럼 생제르맹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는 전략으로 오 비외 캉푀르는 단시간에 아웃도어 및 스포츠 매장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는 고객들이 일부러 이곳을 찾게 만드는 데는 특별한 요인이 있었다. 바로 직원들의 뛰어난 고객 소통 능력이다. 
    오 비외 캉푀르의 직원인 앙투완은 어느 날 러닝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자신의 매장에 등산용 가방을 찾는 고객이 오자 친절하게 길 건너편의 등산 장비 매장을 안내하며 그쪽 직원에게 연결해 주었다. 일한 지 두 달이 된 그에게는 이런 일들이 익숙한 일과였다.
    이후 주력 품목인 러닝화를 찾는 고객이 찾아오자 앙투완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반갑게 고객과 대화를 시작했다. 고객이 주로 어디에서 조깅을 하는지 묻고 자신도 그곳에서 달린다고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단순히 제품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고객과 앙투완의 관계는 단순한 판매자와 구매자를 넘어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원 같은 느낌으로 발전해 갔다.
    이러한 오 비외 캉푀르의 고객 관계 형성은 전략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생제르맹 마을의 주인으로서 고객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한 호스피털리티(Hospitality)가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다른 스포츠 전문 매장들과 차별화된 모습이다. 대형 스포츠 브랜드인 데카트론과 인터스포츠는 각지에서 넓은 점포를 운영하며 다양한 제품을 한곳에서 판매한다. 이로 인해 고객과의 접점은 많지만 점포 직원들이 여러 제품을 다루다 보니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여유는 부족하다. 
    반면 오 비외 캉푀르는 80개가 넘는 품목을 여러 개의 특화된 점포에서 분산 판매한다. 이로 인해 고객과의 소통이 원활하고 깊이 있는 상담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한다.
    또 다른 차별점은 오 비외 캉푀르가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대형 유통업체에 비해 가격은 다소 높지만 지속가능하고 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곳에서는 한두 시즌밖에 입지 못할 저가 제품을 찾아볼 수 없다. 
    품질에 대한 이러한 고집은 고객 신뢰로 이어졌다. 이 신뢰는 오 비외 캉푀르와 고객 간의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오 비외 캉푀르는 대형 매장들과 경쟁하기보다는 고객을 그들만의 ‘마을’로 초대해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다.



    자기 잠식을 방지한 도미넌트 전략

    오 비외 캉푀르가 생제르맹 지구에 20개가 넘는 점포를 두고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는 전략을 마케팅에서는 ‘도미넌트(Dominant) 전략’이라고 한다. 도미넌트는 ‘지배적인’, ‘우세한’, ‘우위에  있는’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도미넌트 전략은 일반적으로 편의점 같은 소매업체가 특정 지역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점포를 확장함으로써 경영 효율을 높이고 해당 지역 내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경쟁업체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뜻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 중 도미넌트 전략을 잘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벅스다. 
    스타벅스는 하나의 지역에 여러 개의 점포를 열어 그 지역을 ‘도미넌트 에어리어(Dominant Area)’로 만든다. 그렇다면 오 비외 캉푀르는 왜 스타벅스와 같은 도미넌트 전략을 채택했을까. 도미넌트 전략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특정 지역의 성격에 맞는 점포를 집중적으로 오픈함으로써 물류 경로를 효율화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둘째, 각 점포를 관리하는 슈퍼바이저가 효율적으로 순회할 수 있어 관리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마지막으로 광고와 홍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도미넌트 전략에는 몇 가지 문제점도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잠식(Cannibal
    -ization)’이다. 인접한 점포 간에 고객을 서로 나누는 전략은 서비스 품질과 고객 응대 수준을 높이는 데 긍정적일 수 있지만 지나치면 본래의 목적을 잃을 수 있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점포를 운영할 경우 그 지역의 환경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리스크도 있다.
    오 비외 캉푀르는 경쟁 기업이 없고 환경적 리스크도 크지 않다는 판단 하에 도미넌트 전략을 도입했다. 그리고 도미넌트 전략의 문제점인 자기 잠식을 방지하기 위해 각 점포마다 판매하는 제품을 다르게 구성했다. 고객이 찾는 제품이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다른 점포에 가면 원하는 제품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전환시키는 높은 고객 응대 능력도 갖췄다.
    한편 오 비외 캉푀르는 비용 절감을 통해 투자 리스크 관리에도 적극적이다. 예를 들어 산악자전거 판매 의견이 나왔을 때 재고가 차지하는 공간 문제를 고려해 자전거 대신 자전거 장비에 특화된 점포를 오픈했다. 이는 도미넌트 전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오 비외 캉푀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캠핑 아웃도어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을지로에 가면 조명 가게가 모여 있고 낙원상가에 가면 악기 가게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곳들은 도미넌트 전략의 결과물이 아니다. 자연 발생적으로 그리고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된 ‘비전략적 공동체’에 기반을 둔 마을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만약 오 비외 캉푀르 같은 기업이나 조직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재의 비전략적 공동체를 도미넌트 전략을 통해 독립적이면서도 전문적이고 계획된 형태로 전환한다면 어떨까. 이 공간들이 새롭게 활기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